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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요 연보

HISTORY OF KOLBE


성막시밀리아노 콜베의 동상

성모기사회의
창설자

성 막시밀리아노 콜베의 주요연보


  • 18941. 8

    폴란드에서 율리오 콜베와 바브로프스카의 둘째 아들로 출생. (세례명:라이문도)

  • 190710

   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입회. 191211그레고리안 대학 철학과 입학

  • 191710.17

    ‘원죄 없으신 성모기사회’ 창설

  • 19184.28

    로마에서 사제 서품

  • 1919

    폴란드 귀국

  • 19191

    ‘성모기사지’ 창간

  • 1927

    바르샤바 근교의 넓은 땅을 기증받아 ‘니에포칼라누프(성모마을)’ 건설

  • 19304.24

    선교지 일본에 도착. 나가사키에서 일어판 '성모기사지' 창간

  • 1936

    폴란드로 귀국

  • 19415.28

    '아우슈비츠로' 연행'

  • 19428.14

    감방동료 대신 아사형을 받아 순교

  • 197110.17

    시복

  • 198210.10

    시성

  • 1894~1932
    • 18941.8

      블로클라벡 교구, 로스 지방 시에라즈의 즈둔스카볼라에서, 아버지 율리오 콜베와 어머니 마리아 다브로브스카 사이에서 출생하다.
      승천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된 성당에서 같은 날 라이문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다.

    • 19026.29

      파비아니체의 성 마태오 본당에서 에도아르도 스줄크 신부로부터 첫 영성체를 받다.

    • 19078.18

      즈둔스카볼라의 성모 승천 성당에서 카시미로 즈지토비에카 주교로부터 견진성사를 받다.

    • 파비아니체에서 민중의 사명에 대한 펠레그리노 학젤라 신부의 강론에 감화되어, 라이문도와 그의 형 프란치스코는 레오폴리에 있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의 소신학교에 들어가다.

    • 1908

      마리아 콜베는 남편의 허락 하에 레오폴리의 베네딕도 수녀회에서, 1913년부터는 그라코비아의 펠리칸 수녀회에서 봉사하면서 재속회원으로 지내다.

    • 19109.4

      라이문도 콜베는 레오폴리에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도복을 입고, 막시밀리아노라는 수도명으로 수련을 시작하다.

    • 19119.5

      막시밀리아노 형제는 관구장 펠레그리노 신부의 주례로 레오폴리에서 유기서원을 하다.

    • 191211.10

      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하다.

    • 19149 - 10

      폴란드 지방 공무원이었던 율리오 콜베가, 러시아인들이 재점령한 울즈크와 미에코브 사이에서 체포, 감금되었다가 후에 총살되다.

    • 11.1

      막시밀리아노 형제는 로마의 세라피쿰 국제 신학대학 구내 성당에서 수도회 부총장 도미니코 타바니 주례로 종신서원을 하다.

    • 19155 - 6

      제1차 세계 대전 중, 삼국 동맹에서 이태리가 탈퇴한 후(1915. 5. 4), 오스트리아와 싸움이 시작되다.
      막시밀리아노 수사는 산 마리노 공화국에 들어가 시민권 획득에 필요한 절차가 끝날 때까지 약 1개월간 머무르다.

    • 10.22

      철학 박사 학위를 받다.

    • 11.4

      로마에 있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성 보나벤투라 신학대학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하다.

    • 19171.20

     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서 알퐁소 라티스본느에게 발현하신지 75주년을 맞아, 막시밀리아노 형제는 로마의 세리피쿰 국제 신학 대학 구내 성당에서 묵상을 하던 중, 마리아의 신심단체를 세울 영감을 받다.

    • 191710.16

      로마의 세라피쿰 국제 신학대학의 동료 수사 6명과 함께, “원죄 없으신 성모기사회(M.I.)”를 세우다.

    • 19184.28

      발레의 성 안드레아 성당(S. Andrea della Valle)에서 로마교구 교황 대리 추기경 바실리오 폼펠리로부터 사제서품을 받다.

    • 4.29

     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서 1842년 알퐁소 라티스본느에게 나타나셨던 성 안드레아 델레프라테 성당(S. Andrea delle Fratte)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다.

    • 19193.28

      몬시뇰 도미니코 야훼 대주교의 청원에 따라, 교황 베네딕도 15세는 성모기사회를 구두로 축복하다.

    • 4.4

      수도회 부총장 도미니코 타바나 신부는 성모기사회를 공식문서를 통해 축복하다.

    • 7.22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로마의 성 보나벤투라 신학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다.

    • 7.23 - 29

      조국으로 돌아오는 여행길에 오르다.

    • 10

      그라코비아의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기 시작하다.

    • 12.20

      그라코비아의 아다모 스테파노 사피아 몬시뇰이 성모기사회 회칙을 폴란드어로 출판하도록 허락하다.

    • 19208.11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그의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자코파네로 가다. 그곳에서 그는 병원의 지도 신부를 겸하게 되다(현재 그 병원을 전염성 질환을 전담하는 진료소로 되어 있다).

    • 19215.4 - 11.3

      나스차와에서 병의 회복을 위해 휴양하다.

    • 19221.2

      로마교구 교황 대리 추기경 폼펠리가 성모기사회를 ‘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기사 신심단체’로 승인하다.

    • 1

      그라코비에서 성모기사회 첫 회지가 '라체르츠 니에포칼라네이(Rycerz Niepokalanej)'라는 이름으로 5,000부갈 출판되다.

    • 10.2

      성모기사지 편집실이 그라코비아에서 그로노드로 옮겨지다

    • 12

      성모기사지 1923년 1월호가 수동식 인쇄기로 자체 출판되다.

    • 192411 - 12

      성모기사지에 삽입될 1925년 달력이 12,000부 발행되다.

  • 1925~1932
    • 19268.28

      바르샤바에서 개최된 제1회 가톨릭 대회(8.28-30)에서 저널리스트의 소명과 책임에 대해 강의를 하다. 이 대회에서 가톨릭 일간지는 그 출판을 요청하다.

    • 9.18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다시 결핵 치료를 위해 자코파네로 가다.

    • 11.2

      성모기사회 창설 5주년을 맞아 교황 비오 11세는 성모기사지를 축복하다.

    • 12.18

      교황 비오 11세는 로마의 세라피쿰 국제 신학대학에서 설립되 성모기사회에 전대사를 허락하다.

    • 19274.13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자코파네에서 요양을 끝내다.

    • 4.23

      로마의 세라피쿰 국제 신학대학에 있는 성모기사회가 총본부로서 법적 승인을 받다.

    • 6.13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치보로브스키 본당 신부를 만나, 요한 드루키 루벡기 왕으로부터 잡지 발간을 위해서 수도원 설립에 필요한 바르샤바 근교의 땅 입수 가능성을 이야기하다.

    • 7.11 - 12

      출판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원 설립에 필요한 땅의 입수를 위해 드루키 루벡기 및 그의 재산 관리자와 접촉을 시작하다. 왕은 테레신에 소유하고 있는 5모르가의 땅을 제공하는 조건을 분명히 하다.

    • 7.21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1927. 7. 19-21 사이 레오폴리에서 열린 관구 총회에서 알퐁소 오클리니 총장으로부터 수련장으로 임명되다.

    • 8.6

      테레신에 세운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상을 축성하다. 이 성모상은 미래에 세워질 출판 수도원 앞뜰에 세워지게 되다.

    • 10.5

      출판을 위한 수도원 설립을 시작하다.

    • 10.31

      니에포칼라누프의 수도원 설립이 법적으로 정식 허가되다.

    • 11.21

      성모기사 출판에 관계되는 모든 시설 및 수도자들을 그로드노에서 니에포칼라누프로 옮기다.

    • 12.7

      관구장 코르넬리오 추프릭 신부가 새로운 수도원을 축성하다. 수도원 가족은 신부 2명, 수사 18명이었으며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원장이 되다.

    • 19287.21

      평수사 수련자들이 레오폴리에서 니에포칼라누프로 이주하다.

    • 19299.19

      니에포칼라누프에 소신학교를 개설하다.

    • 19301.14 - 2.5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극동 지방의 선교를 위한 준비로 비인, 로마, 아씨시, 파도바, 토리노, 마르세이유, 루르드, 파리, 리지외, 아우스부르크, 뷔르츠부르그, 베를린, 토룬, 알렉산드로브 쿠자브스키를 방문하다.

    • 2.26

      첫 극동 선교사들이 니에포칼라누프를 떠나다(막시밀리아노 신부, 제노 제브로브스키 수사, 힐라리오 리사코브스키 수사, 세베리노 다지스 수사, 시지스몬도 크롤 수사). 바르샤바에서 로마로, 그리고 마르세이유까지는 기차로 여행을 했으며, 그 다음은 여객선 ‘엔젤’호를 타고 포트사이드, 지부티, 콜롬보, 싱가포르, 사이공, 홍콩을 거쳐 상하이에서 12일 동안 머물다. 세베리노 수사와 시지스몬도 수사는 중국어판 기사지를 출판하기 위해 이곳에 남고, 다른 이들은 나가사키를 향해 떠나다.

    • 4.24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와 제노 수사 및 힐라리오 수사가 나가사키에 도착. 나가사키의 주교 몬시뇰 젠나로 하야사카는 이들 선교사들을 맞아들이고, 일본어판 기사지 출판을 허락하다.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교구 신학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다. 이들은 주교좌 성당 가까이의 임대 주택에서 거주하게 되다.

    • 5.24

      기사지를 나가사키에서 출판, 발송하기 시작하다. 10,000부 발행.

    • 6.12 - 7.3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레오폴리에서 열린 관구 총회(7.21-24) 참석차 시베리오 철도를 이용해 귀국하다.

    • 7.24

      관구 총회는 일본 선교지방의 책임자로 막시밀리아노 신부를 임명하고, 그의 동생 알퐁소 콜베 신부를 니에포칼라누프의 원장으로 임명하다.

    • 8.13 - 25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와 미에칠슬라브 미로크나 및 다미아노 에벨 수사와 함께 러시아, 시베리오 및 한국을 거쳐 나가사키에 도착하다.

    • 12.3

      니에포칼라누프 수도원 원장 알퐁소 콜베 신부가 코지코바가의 병원에서 죽다.

    • 19315.16

      사회의 일본 본부가 나가사키의 오우라에 있던 임대 주택에서, 홍키의 외곽 히코산 중턱에 폴란드 선교사들이 세운 수도원으로 옮겨지다. 수도원의 이름은 ‘무젠자이노 소노(원죄 없으신 성모의 동산)’로 명명하다.

    • 19325.29 - 7.24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일본선 ‘아프리카 마루’로 제3의 니에포칼라누프 창설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인도로 가다. 에르나쿨람에서 여러 관계 인사와 만나고 나가사키로 돌아오다.

  • 1933~1982
    • 19334.7 - 5.30

      관구 총회 참석을 위해 선편으로 폴란드로 돌아오다. 오는 길에 로마에서 3주간 머물다.

    • 7.17 - 20

      그라코비아에서 열린 관구 총회에 참석하여 일본 선교에 대해 언급하다. 나가사키 수도원 장상으로 전 관구장 코르넬리오 추프릭이 임명되다.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기사지 편집장과 전세계의 ‘성모기사회’일을 전담하게 되다.

    • 8.14

      폴란드의 교황대사 몬시뇰 프란치스코 마르막기가 오트복에서 막시밀리아노 신부가 준비시킨 일본 전권대사 프란치스코 카와이에게 세례를 베풀다.

    • 8.13 - 10.4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베니스에서 여객선 ‘톤테로쏘’ 호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오다.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 원장으로 새로 부임하는 코르넬리오 추프릭과 함께 동행하다.

    • 19364.16

      ‘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’에 소신학교를 개설하다.

    • 5.23 - 6.23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선편으로 마닐라를 거쳐 제노바에 도착함으로써 완전히 전교지방을 떠나다.

    • 7.13 - 16

      그라코비아의 관구 총회에 참석하다. 폴란드 니에포칼라누프의 원장으로 부임하다.

    • 10.1

      1936년 7월의 관구 총회의 결정에 의거한 요청에 따라 수도회 베다 헤스 총장은 막시밀리아노 신부를 수도회 폴란드 관구의 종신 참사위원으로 임명하다.

    • 12.8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의 노력으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원죄 없으신 성모께 봉헌하다.

    • 19371 - 2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‘성모기사회의 재조직’을 위해 이태리의 여러 도시(로마, 아씨시, 파도바)를 방문하고, 마리아 신심회로서 20주년을 맞는 축제에 참석하다.

    • 12.8

      니에포칼라누프 창립 10주년을 맞아 바르샤바에서 라디오로 말씀하다. 폴란드의 성모기사회의 보다 활발한 활동을 위해 5개년 계획을 시작하다.

    • 19382.2

      ‘지난해의 니에포칼라누프’라는 제목으로 바르샤바에서 라디오로 말씀하다.

    • 12.8

      니에포칼라누프에서 ‘라디오 니에포칼라누프 제3폴란드국’의 첫 시험방송을 하다.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방송개시 강연을 하다.

    • 19395.22 - 26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요셉 린키에브츠가 헌납한 대지를 살피러 로마노프카 지방의 레토니아로 가다. 그분은 이곳에 새로운 니에포칼라누프의 설립을 구상하다.

    • 7.27

      바르샤바 국무 회의실에서 개최된 출판 홍보관계 대표자 모임에 참석하다.

    • 8.23

      폴란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관구가 2개로 분할되다. 그 하나는 바르샤바에 관구 본부를 두고 ‘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관구’라 하고, 다른 하나는 그라코비아에 관구 본부를 둔 ‘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와 스트레파의 복자 야고보 관구’라 부르게 되다. 니에포칼라누프는 ‘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관구’에 속하게 되다. 막시밀리아노 신부 역시 폴란드 북쪽에 위치한 이 관구에 귀속하게 되다.

    • 8.25

      8월 23일 - 25일간에 가졌던 관구 총회의 결정에 따라,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다시 니에포칼라누프의 원장이 되다.

    • 9.1

     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다. 이후 폴란드 정부는 9월 27일에 독일에 항복하다.

    • 9.19

      비오 바르토식 신부, 일본인 신학생 김 루도비코 수사와 35명의 수사들과 함께 독일 군대에 의해 체포되다. 람스돌프의 강제 수용소에 9월 21부터 수용되다. 9월 24일부터 암티츠에서, 그후 11월 9일부터 오스트르체스조브에서 수용되다.

    • 12.9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와 동료 형제들이 오스트르체스조브에서 풀려나다.

    • 194011.20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의 청원에 따라 독일 관계 당국은 성모기사지 1회분(1940. 12-1941.1)의 출판물을 바르샤바 지역에만 배부하는 조건으로 허락하다. 120,000부를 간행하다.

    • 19412.17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바르샤바의 파비악에 감금되다.
      유스티노 나찜, 우르바노 치에슬라, 비오 바르토식, 안토니오 바예브스키 신부도 같이 체포되다.

    • 5.28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수인을 가득 태운 기차에 실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이감되다. 이곳에서 수인번호 16670번을 받다.

    • 7 - 8

      7월 28일 - 8월 1일 사이에 아우슈비츠 소장 프리치가, 막시밀리아노 신부가 수용되어 있는 14A동의 한 탈주자에 대한 보복으로 10명의 죄수를 선택, 아사형을 명령하다.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아사형에 희생당하게 된 한 수인(프란치스코 가조브니체크)를 대신하여 죽기를 자원하다. 프리치가 이를 허락하다. 지명된 수인들이 13구의 지하감옥에 감금되다.

    • 8.14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가 왼팔에 독약 주사를 맞고 죽다.

    • 8.15

      막시밀리아노 신부의 시신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내 한 화장장에서 소각되다.

    • 19463.17

      어머니 마리아 다브로브스카가 76세의 나이로 크라코비아에서 선종하다.

    • 197110.17

      교황 바오로 6세는 막시밀리아노 신부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복자로 선포하다.

    • 198210.1

     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시성되다.